우리나라 토목의 초창기부터 근대화까지 역사의 흐름 한 축을 담당했던 황학주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지난 1월 10일 14시 40분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했다. 황 교수는 부인과 사별한지 일주일만에 폐렴으로 임종하게 돼 주변인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는 평소 토목을 제왕의 학문이라며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생명과 구조물을 연구해왔다. 우수한 수많은 토목인들을 가르쳤으며 그의 행보는 토목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연세대학교 큰 선생으로
황학주 교수는 연세대학교의 초대 토목공학과 교수를 시작으로 국내 토목계의 발전을 이끌어 온 인물이다. 1929년 6월에 태어난 그는 1955년 일본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1974년에 일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8년 일본에 있을 당시 국내에 일시 귀국한 것이 연세대학교와 인연이 됐다. 대학 선배인 장기원 박사와의 만남이 연세대학교 토목공학과가 창설된 계기가 된 것. 황 교수는 토목공학과 창설에 대한 장 박사의 제안에 흔쾌히 승낙했고 곧바로 동북대학으로 돌아가 건축학을 공부하는 등 교육에 열성을 쏟았다.
1961년 2월에는 연세대학교에 부임하면서 바로 후진양성에 박차를 가했다. 그의 노력으로 1회 졸업생으로 변근주 교수를 비롯한 8명을 배출했다.
당시 황교수는 제자 한명 한명에게 애정을 보이며 성격은 물론 취미, 가정사정까지도 서로 알아가는 한편 방학기간에는 현장학습을 통해 학생들의 실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황 교수는 졸업 후에도 학생들과 잦은 모임을 마련했으며 후에 600쌍 이상의 주례를 서는 등 각별한 제자 사랑의 모습을 보엿다.
이러한 황 교수의 모습은 제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1회 졸업생 중에는 성적장학금을 받은 학생이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등록금을 대주는 등의 우애를 보이며 가족만큼이나 두터운 유대를 이어갔다.
황 교수는 “초창기 토목공학과는 교수와 학생들이 호흡을 같이하며 친밀감을 높였고 자부심을 갖게 만들기 위해 열정적으로 가르쳤다”고 말했다.
그의 교육철학은 이후에도 나타나는데 기술고시에 합격한 제자들에게 계속 교육을 강조하면서 아버지와 같은 가르침을 보였다.
“기술고시를 패스한 학생들에게는 무조건 석사과정을 밟으라고 가르쳤다. 당시에 기술고시만 패스하면 끝이라는 생각을 갖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학교에서 지원금을 이끌어내고 제자들에게 장학금을 주면서 꼭 석사과정을 마치라고 당부했다. 그래서 지금은 고시를 패스한 동문의 95%는 석사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그는 졸업 후에도 식지 않은 열정으로 제자들을 가르쳐 왔다.

토목기술의 발전
인간이 농경생활을 시작해서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고 실생활과 많은 연관을 갖기에 외국은 토목공학을 시민공학이라고 부르고 있다. 학문 명칭 중에 유일하게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한 일곱 개의 물질(월, 화, 수, 목, 금, 토, 일)’이 들어가 있는 것은 특이하다. 이런 이유로 황 교수는 생명과 구조물을 연구하는 제왕 학문은 토목이며, 왕이 되기 위해선 반드시 배워야 할 학문이라고 말한다.
앞으로의 사회는 모든 교통이 땅속으로 지나가고 지상은 사람들의 휴식처인 녹색공간으로 바뀔 것으로 황 교수는 내다보고 있다. 그런 일들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토목인들이 과학기술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앞으로 토목기술의 발전으로 차, 기차 등 땅위로 다니는 모든 교통수단이 땅속으로 지나가게 되고 태양빛과 달빛이 비추는 지상은 사람의 생활 공간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토목을 제왕학문이라고 말하고 앞으로 국민들의 생활에 절대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하는 황 교수는 지구가 끝나는 날 토목도 함께 끝난다고 강조한다. 인류의 시작과 끝을 토목은 함께 하고 있다고 보는 것. IT나 정보기술처럼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토목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 시대는 인간의 생활환경을 중심으로 토목산업이 발전할 것이고 토목의 기본 의미처럼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으로 발전될 것이다. 이때 우리 토목인들도 올바른 교육과 다양한 기술력 확보 및 협력을 통해 우리나라가 세계를 주도하는데 한 역할을 해야 한다.”

오랜소망 해저터널
“한일 해저터널이 만들어지게 되면 착공식에는 꼭 가보고 싶다. 내가 다른 것들은 원이 없는데 해저터널 완공은 못보더라도 착공식만큼은 가보고 싶다.”
황 교수의 해저터널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20년간 일본에서 살아서였을까. 한일 간 해저터널이 만들어지면 양국의 경제효과는 크다고 그는 말한다.
황 교수는 대한해협 터널 공사의 예상 비용은 100조원이지만 이를 통해 한국과 일본이 누리게 될 파급효과를 일본 88조원, 한국은 54조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금액적으로는 일본이 더 많은 혜택을 보게 되지만 건설비 예상액을 한국측 부담을 6분의 1로 설정할 경우 한국은 투자 효율이 더 크다고 계산한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남북통일 이후를 바라보며 시각을 넓게 보고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앞으로 2000년부터 시작된 경의선 철도 복원사업으로 인해 향후 물류비가 절감되고 수송시간을 단축하는 등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한 물적,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할 것으로 예상한다. 동시에 러시아와 중국을 통해 유럽까지 직행할 수 있는 대륙횡단철도와의 연결을 통해 한반도가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자리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황 교수는 보고 있다.
그는 “장기적으로 한일 해저터널을 건설해 시베리아횡단철도와 연계한다면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수송로로 사용할 수 있다”며 “터널이 개통되어 한국이 유럽 대륙과 철도망으로 연결되면 한국은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대수혜국이 될 것이다”고 전했다.
현재 동북아 지역의 외국인 투자 및 교역 확대의 가장 큰 장애 요인으로 운송시스템 미비를 들 수 있는데 우리나라가 세계경제의 한 축으로 그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저터널 등 효율적인 운송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성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 내용에 한일해터널의 필요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황 교수의 한일해저터널에 대한 생각은 그동안 그가 토목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 다양한 분야를 연구해왔던 그의 광범위한 지식이 모아져 해저터널에 대한 애정이 만들어진 것이다.

황 교수의 마지막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가 보여준 교육의 열정은 토목의 뿌리가 되어 제자들이 수많은 가지를 만들고 있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의 참교육은 국내는 물론 현해탄을 건너 그와 20년을 함께한 일본에도 전해졌을 것이라 예상해 본다.
아쉽게 생전에 소망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한일해저터널의 착공식은 후일 그의 가족이나 제자들의 눈을 빌려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정필순 기자  feel@c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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