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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 달리는 동안 주변엔 온통 '소금밭'[18일간의 미국서부 일주 ⑧] 광대한 소금사막 '더 그레이트 솔트레이크'
임은경 기자 | 승인 2016.02.17 08:02

9월 13일 일요일, 솔트레이크시티에서의 마지막 아침. 나흘 밤을 편히 쉰 이 집과도 오늘로 안녕이다. 홍차를 우려 담은 머그컵을 들고 잠시 집 앞으로 나가 아침 산책을 했다. 미치와 엔젤 부부도 우리처럼 머그컵을 들고 집 앞 테라스에 나와 앉아서 모닝 티를 마신다. 길가로 줄지어 선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뭇잎 사이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어 거리는 온통 초록 물결이다. 이 동네에서는 나무가 주인공이고 그 옆으로 늘어선 나지막한 집들은 조연이다.

동네가 얼마나 조용한지 침대에 눕기만 하면 세상모르고 잠이 들어서 시차 피로도 모르고 지냈다. 전날 종혁씨가 맥주와 과자를 사온 가게 '최고야(Chegoya)'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왔다. 이곳은 숙소 근처 모퉁이에 있는 작은 가게(Liquor store)인데, 나흘 동안 그 앞을 지나면서 '저거 한국말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참에 그날 가보니 과연 주인이 한국인이어서 둘이 함께 웃었더랬다.

마트에서 사온 유기농 계란으로 프라이를 해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9시 반쯤 집주인 부부와 인사를 나누고 출발했다. 며칠 사이 종혁씨와 얘기를 나누면서 친해진 엔젤은 다음에 또 오라며 다정한 작별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하루 종일 길 위에서 보내야 한다. 다음 날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관광할 계획이기 때문에 오늘 유타를 벗어나 네바다를 가로질러 최대한 요세미티로 들어가는 길목에 가까운 곳에서 묵을 예정이다.

운전에만 장장 여덟 시간 이상이 소요될 예정이라 떠나는 길을 서둘렀다. 도시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집에서 가까운 트롤리스퀘어 쇼핑몰에 있는 홀푸드 마트에 들렀다. 사과, 자두, 복숭아 등 가는 길에 먹을 과일과 매장에서 끓여서 파는 클램차우더 수프, 유리 물병, 캔에 담긴 라바짜(Lavazza) 분쇄 커피를 샀다.

유리 물병은 26달러쯤 했는데 막상 계산할 때 보니 누군가 뚜껑을 바꿔 가는 바람에 몸통과 뚜껑이 짝이 맞지 않는다며 돈을 받지 않고 그냥 주었다. 정상품이 아니라서 돈을 받고 팔 수 없다면서. 오호, 이 사람들의 합리주의란 이런 것이군. 뜻밖의 행운에 기분 좋은 얼떨떨함을 안고 드디어 솔트레이크시티를 벗어난 것이 아침 10시.

▲ 서쪽으로 도시를 벗어나자 가도가도 끝없는 소금사막이 펼쳐졌다.

정든 솔트레이크시티에 작별을 고하다

서쪽 방향으로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일대 장관이 펼쳐진다. 소금, 소금, 소금. 좌와 우, 앞과 뒤, 보이는 모든 것이 새하얀 소금이다. 말로만 듣던 거대한 솔트레이크 사막(The Great Salt Lake Desert)의 장관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다. 우리 차의 속도가 시속 90마일(약 140km/h)이었는데 이 속도로 한 시간을 달리는 동안 주변이 온통 소금밭이었다.

도중에 기름을 넣으러 주유소에 들어갔더니 시멘트 바닥 여기저기 차바퀴에 묻어온 소금이 덩어리째 흩어져있다. 가만 보니 차들이 얌전히 도로만 달리는 게 아니고 핸들을 틀어 소금밭 위를 달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주유소 근처에도 길이 아닌 소금 사막 쪽으로 난 바퀴 자국이 여럿이다. 한 시간 넘게 달려 드디어 소금 사막을 벗어날 즈음이 되자 네바다 주 경계 안내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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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간을 달리는 동안 보이는 모든 것이 다 소금이다.
 

 

유타를 벗어났다는 것은 '쇼걸(Show Girl)'이라고 쓰인 커다란 광고판을 보고도 알 수 있다. 아침에 차와 커피를 많이 마신 탓에 이날 유난히 화장실을 자주 찾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들르는 휴게소나 주유소, 편의점마다 모두 한쪽에 카지노 시설이 딸려 있었다.

네바다는 카지노의 주다. 라스베이거스만이 아니라 네바다 전체에 카지노가 없는 곳이 거의 없다. 도박에서 거둬들이는 주정부의 세금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땅이 워낙 척박해서 이것 말고는 마땅히 육성할 만한 산업도, 사람들을 끌어들일 방법도 없을 듯싶다.

점심을 대신하려고 산 과일과 수프를 차에서 먹었다. 파인트보다 조금 작은 종이 그릇에 담아 6달러 조금 안 되는 클램차우더 수프는 어찌나 맛이 있던지 사자마자 다 먹어버리고 말았다. 으깬 감자와 각종 채소에 크림을 더한 진한 국물에 큼지막한 조갯살이 통째로 씹혔다. 재료의 신선한 맛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좋은 음식이었다.

유기농 전문점을 표방하는 홀푸드는 물건 값이 대체로 비싼 편인데, 과일들도 근처의 다른 슈퍼마켓보다 비쌌지만 맛은 모두 훌륭했다. 겉은 까맣고 속은 노란 자그마한 자두(plum)를 두어 개 샀는데 신맛이 전혀 없고 꼭 황도복숭아처럼 맛이 달았다. 홀푸드라고 해서 꼭 유기농만 취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키운 '좋은 음식'인지에 신경을 많이 쓰는 듯했다.

복숭아를 고르면서 '유기농이냐'고 점원에게 물었더니, '유기농은 아니지만 근처 2~30마일 이내에서 생산된 로컬 푸드(Local Food)'라고 자랑스럽게 대답한다. 생체 리듬이 반대로 바뀐 탓인지 여행을 다니는 동안 이상하게 입맛이 없어서 밥 대신 과일을 많이 먹었던 내게 온갖 종류의 과일이 풍성한 미국이란 나라는 얼마나 축복의 땅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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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바다는 주유소나 편의점마다 한쪽에 간이 카지노 시설이 있었다.
 

 

한 시간 달리는 동안 눈앞엔 온통 소금 사막

서쪽으로, 서쪽으로 우리가 달리는 이 도로는 미국의 동쪽 끝 뉴욕에서 서쪽 끝 샌프란시스코까지 미 대륙을 관통하는 80번 고속도로다. 둘 다 인디언 이름인 듯한 베오와웨(Beowawe)와 윈네무카(winnemucca) 휴게소에서 각각 잠시 휴식을 취했다.

휴게소 한쪽에 우리가 달리는 길이 캘리포니아 트레일(California Trail)이라고 표시해 놓은 녹슨 간판이 서 있다. 서부개척시대에 황금을 찾아 수많은 사람들이 이동했던 바로 그 길이란다. 그 위에 지금의 고속도로를 놓은 것은 2차 대전의 영웅이었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다. 그래서 이 80번 고속도로를 '아이젠하워 하이웨이'라고도 부른다.

또 다른 하얀 입간판에는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초상화와 함께 미국 영토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80번 고속도로가 붉은색으로 표시된 지도가 그려져 있다. 그 아래에는 '내륙 고속도로 체계의 아버지(Father of the Interstate Highway System)'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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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캘리포니아 트레일'과 '아이젠하워 고속도로'를 표시해놓은 휴게소 안내판.
 

 

베오와웨 휴게소에서는 젊은 원주민 청년들이 하늘색 돌로 만든 목걸이, 귀걸이, 반지 따위의 장신구를 바닥에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처음 보는 그 선명한 하늘색 돌이 무엇인가 했더니 터키석이란다. 인근의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많이 나는 터키석을 가공해서 만든 것인데, 이런 장신구 판매가 보호구역 안에 사는 원주민들의 수입원이 되는 듯했다.

보석은 참 예쁜데 그걸 달고 있는 목걸이 줄이며 귀걸이의 디자인은 서툴기 짝이 없다. 원주민 느낌이 물씬 나는 장신구들이다. 터키석은 오래 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장신구에 많이 사용하던 보석이다. 나도 수백 년 전 인디언 여인들처럼 푸른 터키석을 목에 걸어볼까.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가 20~30달러 선으로 매우 저렴했지만, 평소 장신구에는 영 취미가 없던 터라 결국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아이젠하워 하이웨이'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하루 종일 길 위에 있는 날은 주변의 자연과 동물들이 눈에 더 들어온다. 한국과는 모양과 생김새가 다른 새들이 인상적이다. 파닥파닥 날아가는 작은 새가 달리는 차 앞을 순식간에 지나갔다. 온 몸이 파랗다. 크기와 모양이 우리나라의 제비 비슷한데 몸놀림은 훨씬 재빠르다. 이름을 물어보니 북아메리카 대륙에만 사는 블루제이일 것이라고 한다. 이름도 예쁘고 생김새도 예쁜 새. 손에 넣기 어렵다는 행복의 파랑새가 생각났다.

네바다의 사막으로 접어들자 멀리서 두 날개를 활짝 펴고 활공하는 독수리가 많이 보였다. 날개를 수시로 파닥거리는 작은 새들과는 차원이 다른 위엄 같은 것이 느껴진다. 독수리는 사람 있는 곳으로는 오지 않아서 가까이서 볼 수는 없었다. 달리다 보니 로드킬을 당한 토끼나 사막여우 같은 동물들의 시체가 간간이 눈에 띈다. 고속도로 상공을 나는 독수리들은 아마도 그런 동물의 시체를 찾아다니는 것이리라.

우리도 의도치 않게 마침 길 위로 비상하던 새를 한 마리 치고 말았다. '퍽' 하는 소리까지 났으니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네바다의 사막 한복판 휴게소에는 참새처럼 가게 앞을 뛰어다니는 자그마한 새들이 있었는데 몸 전체가 까마귀처럼 까맣고 크기는 한국의 직박구리보다 좀 작고 날씬했다. 일종의 사막 참새?

그런가 하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참새와 까마귀는 생김새도 크기도 한국에 사는 종류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나중에 캘리포니아의 바닷가에서 본 갈매기도 그랬다. 도시의 음식물 쓰레기가 생기는 곳에는 빠지지 않는 비둘기도 똑같다.

샌프란시스코 부두에 있는 해산물 레스토랑 거리는 바닥에 떨어진 음식 찌꺼기를 먹으려고 몰려든 비둘기 떼가 지천이었다. 레스토랑 앞에는 주차장이 있어서 차가 수시로 지나다니는데, 비둘기들은 차가 지나가도 아랑곳없이 음식을 주워 먹다가 차에 치이기도 했다.

사막 한복판 군사도시 호손에서 1박

가며 쉬며 종일 길을 달려 이날 저녁에 찾아든 곳은 네바다 주 서쪽 끝자락에 있는 호손(Hawthorne)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다. 80번 고속도로를 타고 리노에 들어가기 전에 95번으로 갈아타고 정남향으로 내려와 당도한 이곳은 근처에 군부대가 주둔해 있는 군사도시다. 처음 와보는 곳이었지만, 이곳은 네바다 쪽에서 요세미티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마을이라 이날 밤은 여기에서 자기로 했다.

길에서 상당한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숙소에 도착하기도 전에 날이 저물었다. 미국은 국도는커녕 고속도로에도 가로등이 없다. 오로지 내비게이션에만 의지해서 생전 처음 와보는 길을 가는데 갑자기 주위가 온통 깜깜해지자 잠시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결국 길을 잘못 들어 도시 외곽의 군 기지 입구까지 갔다가 다시 차를 돌려서 나와야 했다.

얼마 가지 않아 마침내 예약한 숙소인 Holiday Lodge를 찾았다. 우리 눈에 비친 곳이 전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개의 모텔과 식당 몇 군데, 역시나 네바다라면 빠질 수 없는 카지노, 그리고 50~60여 채의 민가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벌판 한복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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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손에서 하룻밤을 보낸 여관 홀리데이 로지(Holiday Lodge).
 

 

인도 전통 의상인 사리를 몸에 두른 할머니가 우리를 맞아 키를 건네주었다. 미국은 요즘 인도 이민자가 늘고 있는데, 시골에 있는 소규모 모텔은 대부분 이들이 운영한다고 한다. 중국인 이민자들이 음식점, 한국 이민자들이 슈퍼마켓이나 세탁소를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인도인은 숙박업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업종별로 국적 구분이 확실하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베트남계가 아닌 사람이 네일살롱을 운영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니 틀린 말이 아니다.

숙소는 예상했던 대로 복도가 따로 없고 방문을 열면 바로 바깥인 2층짜리 시골 여관이다. 미드에서 봤던 대로 방마다 출입문 바로 옆에 커튼을 친 큼지막한 창문이 나 있다. 막상 방에 들어가자 의외로 공간이 넓고 깨끗했다. 한 가운데에 킹사이즈 베드가 놓인 방은 족히 열 평 이상은 되어 보인다. 건물과 시설은 좀 낡았지만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고, TV와 냉장고에 전자레인지, 커피메이커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게다가 1박에 50달러 정도로 값이 저렴하다는 사실. 한국에서는 오래 전에 없어진 대우(Daewoo)의 미니사이즈 냉장고와 전자레인지를 보니 좀 웃음이 나기도 했다.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고 푹신한 침대에 파묻혀 TV에서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를 보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임은경 기자  atree12fl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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