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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나도 끄지 않는 요세미티 국립공원[18일간의 미국서부 일주 ⑨] 요세미티보다 인상적인 것은 사람들의 자연보호 노력
임은경 | 승인 2016.03.23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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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바다에서 요세미티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모노 레이크(Mono Lake)

9월 14일 월요일. 동이 트기 전에 눈이 떠져서 수첩을 펼치고 여행 일정을 정리했다. 서울 집에서는 밤늦게까지 전깃불을 켜놓고 있다가 아침에는 해가 중천에 다다라서야 일어났는데, 여행을 다니니까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된다. 여행자는 해가 지면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날이 밝아오기에 신선한 공기도 마실 겸 문을 열고 밖에 나가 보았다. 모텔 옆 공터에 집채보다 큰 트럭이 여러 대 서 있다.

이제 보니 이곳은 화물을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들이 하룻밤 묵어가는 '기사 여관' 같은 곳이었다. 그제야 새벽에 들려온 희미한 엔진 소리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아침식사는 전날 월마트에서 사온 음식으로 해결했다. 근처에 먹을 만한 곳이 별로 없다는 인터넷 댓글을 보고 호손에 도착하기 한 시간 전에 다른 마을에서 장을 봐온 것이다. 

요거트 드레싱을 얹은 유기농 베이비 샐러드와 통밀빵, 얇게 썬 칠면조 햄, 설탕처럼 달콤한 캘리포니아 청포도, 나초와 살사 소스로 아침을 먹었다. 커피메이커 옆에 딱 2인분쯤 되는 간 커피가 지퍼백에 들어 있기에 그걸 내려서 뜨거운 커피도 한 잔씩 마셨다. 

여덟 시가 조금 넘어서 요세미티로 출발했다. 요세미티 입구까지 한 시간 넘게 달리는 동안 좁은 2차선 도로 위에는 우리 말고는 거의 아무도 없었다. 인가나 다른 마을도 눈에 띄지 않았다. 요세미티는 캘리포니아 쪽에서 들어가는 서쪽 입구와 네바다 쪽에서 들어가는 동쪽 입구가 있는데, 우리처럼 네바다에서 요세미티로 들어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 모양이다. 

보이는 것은 지평선과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사막 뿐. 국화처럼 샛노란 꽃으로 뒤덮인 키 작은 사막 식물들만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달려 조금씩 고도가 높은 산길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저 멀리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자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래와 풀밖에 없던 풍경이 점점 울창한 초록색으로 바뀌면서 길은 점점 더 높이 올라간다.

파란 눈의 귀인이 가르쳐준 비밀(?)의 호수

이윽고 전망이 탁 트인 커다란 호수가 나왔다. 나중에 지도를 찾아보니 요세미티로 들어가는 티오가 로드(Tioga Road) 입구에 있는 모노 호수(Mono Lake)였던 것 같다. 하늘로 쭉쭉 뻗은 침엽수림과 민낯을 드러낸 하얀 바위산 아래 누운 호수는 물빛이 아주 파랗다. 우리도 다른 관광객들처럼 차를 세우고 내려서 사진을 찍었는데, 물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차서 얼른 도로 차에 올라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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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세미티 입구 근처에 있는 오두막 산장
 

 

조금 더 가니 예쁘장한 통나무 오두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방문자 센터가 나왔다. 십여 채의 오두막은 관광객들이 묵는 숙소이고, 맨 앞에 놓인 사무실 건물에는 기념품점과 카페, 아이스크림 가게 등이 있었다. 마침 화장실을 찾고 있던 터라 그 앞에서 차를 멈췄다. 오두막 사이로 난 오솔길로 올라가는데 등산복 차림에 선글라스를 낀 웬 백인 노신사와 마주쳤다. 

그가 갑자기 우리를 붙잡더니, 묻지도 않았는데 방금 자기가 보고 온 것을 흥분한 기색으로 주절주절 이야기한다. 이 오솔길 너머로 언덕을 넘어가면 세 개의 작은 호수가 나오는데, 정말 좋다면서 한번 가보라는 것이다. 반쯤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한편으로는 호기심에 차서 그 길로 가보았더니 정말 그가 말한 대로 세 개의 그림 같은 호수가 있었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작은 호수들이다. 하지만 호수를 둘러싼 초록의 나무숲과 하얀 바위산, 파란 하늘이 투명한 물에 그대로 비치는 완벽한 거울 호수(Mirror Lake)였다. 꼭 어렸을 때 달력에서 보던 풍경 앞에 서있는 것 같았다. 이곳은 요세미티 입구에 들어가기도 전이라 주변에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아무도 모르는 우리만의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아침이었다. 

세 개의 호수를 연결하는 작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공기가 얼마나 깨끗한지 숨을 쉴 때마다 코가 뻥 뚫린다. 나는 선천적으로 비강이 약해서 겨울이 오면 어김없이 비염으로 고생했는데, 이곳에서 이 공기를 마시고 산다면 비염 따위는 금세 사라질 것만 같았다. 호수만 예쁜 것이 아니라 주변의 나무도 풀도 다 어여쁘다.

이끼처럼 바닥에 낮게 깔린 풀에는 채 마르지 않은 아침 이슬들이 맺혀 있다. 대여섯 개의 이파리가 방사형으로 돋아난 것이 꼭 별을 연상케 했다. 꼬마 신부의 부케가 있다면 이런 것일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나무들은 소용돌이 모양으로 자란 것도 있고, 엉덩이를 하늘로 하고 깊숙이 허리를 숙인 것처럼 뒤틀려 자라난 것도 있다. 

눈에 보이는 나무란 나무는 다 침엽수다. 이 일대에 분포한 것은 그중에서도 백송(Whitebark Pine)인데, 이 나무의 열매를 좋아하는 산갈가마귀(Clark's Nutcracker)의 도움을 받아 더 멀리 번식한다고 한다. 이 새는 백송의 씨앗을 땅에 파묻어 저장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중 약 30% 정도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처의 자그마한 안내판은 이런 재미난 사실과 함께, 인간과 뭇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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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발길이 별로 닿지 않은 요세미티의 작은 호수(Mirror Lake)
 

 

백두산보다 높은 고도 9945피트

그렇게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삼십여 분 산책을 마치고 차로 돌아왔다. 이날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세 개의 호수를 탐방하던 그 아침나절만큼은 푸른 하늘이 보이고 햇빛이 비쳤다. 하지만 요세미티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날이 흐려지더니 오후가 되자 부슬부슬 비까지 왔다. 다행히 소나기는 아니어서 우산 없이도 다닐 만은 했다. 

호수 산책로에서 요세미티 입구까지는 금방이었다. 십 분도 못 가서 펄럭이는 성조기 아래 '요세미티 국립공원(Yosemite National Park)'이라고 쓰인 나무 현판이 나왔다. 길 한가운데에 입장료를 받는 작은 부스가 보였다. 부스 처마 밑에는 현재 이곳의 고도가 9945피트(약 3030미터)임을 표시한 현판이 걸려 있다. 세상에, 내가 백두산보다 높은 곳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입장료는 사람 수대로 받는 것이 아니고 차 한 대당 30달러인데, 이 돈을 내면 공원 내 캠핑과 하이킹을 포함해 7일 동안 요세미티를 이용할 수 있다. 입장료를 냈더니 요세미티 지도가 인쇄된 팸플릿과 <요세미티 가이드>를 준다. 요세미티 여행 정보가 수록되어 있는 <요세미티 가이드>는 한 달에 한 번씩 나오는 타블로이드판 신문이다. 보안관 복장을 한 안내소 직원은 "즐거운 여행이 되시라"는 친절한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미국 여행을 다니면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모두 친절하다는 것이다. 민박을 했던 집 주인들은 물론 그들의 아이들도, 공원이나 박물관의 안내원들도, 심지어 길을 걷다 만난 모르는 사람들까지 눈을 마주치면 꼭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 왔다. 며칠 전 라스베가스의 호텔에서 이른 새벽에 아무도 없는 로비에 나갔다가 덩치 큰 흑인 남자 직원을 마주쳤다. 한국에서 하던 습관대로 모른 척하고 지나가려는데 "굿모닝" 하고 날아오는 굵은 목소리를 듣고서 좀 무안했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길에서 만나면 무조건 눈을 바라보며 인사하는 사람들. 그에 비하면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한국 사람들은 너무 팍팍하고 불행하게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만나는 사람 누구하고든 웃으며 인사를 나누는 사회는 그렇지 못한 곳보다 적어도 더 행복한 곳일 것이다. 마음의 문을 닫으면 사람들은 그만큼 더 불행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야생동물을 야생 그대로 놔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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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하의 침식으로 둥글게 깎인 바위 산. 화강암 지대라 바위는 대개 흰 빛이다.
 

 

여기서부터는 티오가 로드(Tioga Pass)다. 이 길은 거대한 산악 공원인 요세미티를 동서로 관통하는 길인데, 11월부터 5월까지 겨울 시즌에는 눈 때문에 봉쇄되는 곳이다. 차들의 속도가 눈에 띠게 느려졌다.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곳곳에 사는 야생동물 때문에 도로에서 서행하는 것이 공원의 규칙이다. 이렇게 해도 간혹 속도를 내는 차들 때문에 일 년에 열다섯 마리의 곰이 차에 치이는 교통사고가 난다고 한다. 

느릿느릿 길을 따라 두 시간을 달렸다. 고개를 쭉 쳐들어도 끝이 잘 보이지 않는 커다란 나무들이 마치 호위병처럼 양쪽에 늘어선 2차선 도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침엽수림이다.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요세미티에서 활엽수는 거의 보지 못했다. 울창한 침엽수 사이로 하얀 바위산들이 보인다. 조각가가 정으로 다듬은 것처럼 둥글둥글하다. 빙하의 침식이 만들어낸 지형이다. 요세미티는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기암절벽과 계곡, 폭포들로 유명하다. 산 정상의 수많은 호수들도 1만여 년 전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생겨난 것이다. 
 

꼬불꼬불 산길을 지나 두 시간 만에 요세미티 밸리(Yosemite Valley)에 당도했다. 주차장 진입로 옆에서 큼지막한 사슴 한 마리가 뭔가를 주워 먹고 있다. 사진을 찍으러 몰려든 사람들에 둘러싸였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주차장에 군데군데 큼지막한 쓰레기통들이 있었는데 모두 두꺼운 강철판으로 만들어져 있다. 음식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곰 때문이란다. 근처 캠핑장에서는 가져온 음식을 야생동물들에게 탈취(?)당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종혁 씨는 예전에 미국에서 캠핑을 하다가 냄비에 남겨둔 김치찌개를 너구리에게 깨끗이 도둑맞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종일토록 먹이를 구하러 돌아다녀야 하는 야생동물에게 손쉽게 고열량의 양분을 얻을 수 있는 인간의 음식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음식에 길들면 그들은 자연에서 스스로 살아갈 힘을 잃게 된다. 이 때문에 <요세미티 가이드>는 '야생동물에게 절대 먹이를 주거나 가까이 가지 말라', '야생동물을 야생 그대로 두어 달라(Keep wildlife wild)'고 거듭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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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세미티 밸리에 있는 강철 쓰레기통. 곰이 열지 못하도록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요세미티 가이드>의 친절한 관광안내 못지않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연을 보존하려는 이들의 세심한 노력이다. 길가의 간이 화장실들이 물을 전혀 쓰지 않는 생태화장실인 것도 그렇지만(수세식에 익숙한 미국인들이 이걸 어떻게 견딜까?). 까맣게 불에 탄 밑동을 그대로 드러낸 채 곳곳에 서 있는 나무들은 더 놀라웠다. 

자연을 보존하려는 사람들의 노력

이들은 산불이 나도 일부러 끄지 않는다. 건조한 시기에 바람에 의해 나무에 불이 붙는 것도 자연 현상의 일부이고, 인간이 개입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오랜 가뭄 때문에 요즘 들어 부쩍 산불이 많이 난다. 우리가 요세미티를 관광한 이날도 산불이 민가를 덮쳐 동네 주민들이 대피하고 집들이 전소되었다는 소식이 TV 뉴스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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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에 탄 나무들. 산불도 자연발화인 경우에는 일부러 불을 끄지 않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가 박물관을 구경했다. 요세미티는 사람의 발길이 닿은 지 9천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마침 올해는 요세미티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 125주년 되는 해이다. 박물관에는 이 지역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고, 바깥에는 통나무 또는 나무껍질로 만든 원주민 주거지(Bark House)가 복원되어 있었다. 

요세미티 밸리는 엘 캐피탄, 하프돔 등 기암절벽과 요세미티 폭포, 면사포 폭포 등 요세미티의 유명한 뷰포인트로 통하는 관문이다. 요세미티는 북미에서 가장 높은 739미터짜리 요세미티 폭포 등 멋진 경치를 자랑하는 폭포들로 유명하다. 하지만 폭포를 볼 수 있는 시기는 해빙이 끝나는 봄에서 초여름까지이고, 지금은 가을인데다 요사이 계속되는 가뭄 때문에 물이 완전히 마른 상태였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인 '자이언트 세쿼이아'로 유명한 남쪽의 마리포사 그로브(Mariposa Grove)는 아쉽게도 올해 7월 6일부터 24개월 동안 안식년에 들어가 출입이 금지된 상태였다. 멀리 보이는 하프돔의 하얀 벽을 뒤로 하고 요세미티 밸리를 출발했다. 이번에는 서쪽 출입구로 나와 캘리포니아로 향했다.

임은경  atree12fl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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